구름잡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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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로 간 한복쟁이 & 생각 책장 넘기는 소리

먼저 책장을 펼친 것은 이어령 선생님의 '생각'이었다.
한번씩 선생님의 책이나 글을 접할 때면 청년인 나보다도
앞서 나가는 것 같다는 사고에 감탄을 했는데 새로 나온 책 제목이 '생각'이라니....!
그 무엇보다도 명료하고 간단하고 정확한 제목에 한번 놀랐다.
두번째 놀라운 것은 문화, 사회, 과학, 세계사, 정치 등을 토대로 한 이야기 하나하나였다.
제목만큼 목차 자체가 'th!nk 1'으로 시작하여 13가지의 생각이 담겨있는데,
하나하나 중심이 되는 주제가 있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되는 매듭이 분명하다.
그 매듭이 아주 다양하고도 깊다는 것인데
그러면서 어렵지 않게 풀어나가고 있어 참으로 놀랍다.
'파리로 간 한복쟁이'는 디자이너 이영희 선생님의 책이다.
모친으로부터 이영희 선생님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꽤 많이 들어왔고, 패션쇼를 직접 본 적도 있고...
책으로는 어떠한 깊은 이야기들이 숨어있을까 궁금했는데
추천글의 가장 첫 장이 이어령 선생님의 글로 시작하기에 묘한 공통점을 두 책에서 발견했다.

공통적으로 두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우리나라의 가방에 해당하는 '보자기'와 서양의 '핸드백'이다.
보통 우리나라의 음식, 옷, 주거형태 자체는 감싸는 것이다.
구체적인 목적이 분명하다기 보다는 목적에 따라 응용이 가능한 열린 방식에 가깝다.
그에 비해 서양의 것은 딱 들어맞는다.
옷도 몸에 맞으며, 가구도 늘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고, 음식도 차례에 맞추어 먹어야 한다.
아......
우리나라의 것이 얼마나 융통성이 담겨있는지 다시금 일깨우게 된 시간이었다.

대학교 2학년 무렵에 단국대학교 석주선 박물관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서울컬렉션을 관람하기 위해 부러 학과에서 일주일을 학기 중에 비워주었고,
모두들 관심을 가지고 있는 디자이너의 패션쇼를 정해 시간표를 짰다.
그러면서 교수님들은 각기 다른 주제의 과제를 주셨었는데
한국복식 분야는 석주선 박물관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박물관이길래 다녀오라는 것인지....볼멘 소리를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외가댁에 방문하게 되어 외조모님을 모시고 다녀왔다.
오랜만에 기나긴 외출을 시도하는 터라 조심스러웠지만
외할머니는 즐거워하시며 나에게 하나하나 설명해주셨다.
아.....우리나라의 것이 참 매력적이구나.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우리나라의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기 시작했다.
남들은 까다롭고 성가신다고 듣기 싫어하는 한국복식 실습 과정도 심화과정까지 듣기도 했다.
일러스트와 포토샵 작업이나 트렌드 분석에는 능숙했지만 재봉틀과는 영 궁합이 맞지 않아
고생도 많이 했고, 교수님께 꾸중도 참 많이 들었었다.
한 올 한 올 땀땀이 지어낸 조각보와 솔기가 전혀 보이지 않는 깨끼바느질의 매력을 맛보게 된 것이다.
(파리 오트쿠튀르에 진출한 디자이너 김지해의 부산 프레타포르테 패션쇼 때
 백스테이지에서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 하나하나는 깨끼바느질로 이루어져있어서 소름이 돋는 듯했다.)
외국에 진출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야기한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이 말에 무척이나 동감을 하면서도 나부터가 한복을 입은지 10년도 넘었으니....
그나마 한 가지 실천한 것이 있다면 대학교 3학년 때 섬유공예 과제전시물로
한지로 줌치(한지를 여러 겹 흡착시켜 새로운 한지 섬유를 만들어 내는 것)를 해다가
둥그런 조명 스탠드를 씌웠다는 것? ^-^
개나리 색과 아이보리를 섞어 줌치를 만들고 사이사이에 꽃과 풀을 다른 한지로 그려 넣은 후,
손바느질로 테두리를 그어주었더니 조명 불을 켰을 때 은은한 그 빛이 참 좋았다.
천연염색도 그렇다. 주위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소재가 색을 낼 수 있다니 너무 매력적이지 않은가.
섬유 전공의 교수님께서 주말에 학과의 학생들을 당신의 작업실로 초대하셨다.
흰색 면 티셔츠 한 장만이 준비물이었다.
양파껍질로 염색을 했는데 매염제에 따라 하나는 샛노란색이 나왔고, 다른 하나는 쑥색이었다.
실, 끈, 고무줄, 돌맹이 등등을 이용해서 각자 다양한 무늬도 내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손도 많이 가지만 빛깔이 참 아름다웠다.
그래서 천연염색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질 못하는가보다.

두 권의 책이 나로 하여금 유난히 한 켠에 담아두었던 기억들을 건드리며 자극하는 듯하다.
나도 언젠가는 우리나라의 문화적인 위상이나 실질적인 위상에 영향을 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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